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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 멈추지 않고 계속 진화하는 감독, 두기봉의 '문작'

 

 

 

★★★★1/2

 

 

문작 ( sparrow, 2008)

 

감독/ 두기봉

출연/ 임달화

          임희뢰

 
2008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



 

내가 극장에서 본 추억의 80년대 홍콩영화들.

 

성룡의 프로젝트A (1983, 성룡 감독), 오복성 (1983 홍금보 감독) -- 그의 무술이 아닌 아크로바틱에 감탄했다.

서극의 촉산 (1983, 서극 감독) -- 이 양반 초기에는 노는 물이 달랐다. 당시 경이로운 스케일을 뽐낸다.

주윤발의 성냥개비와 롱코트가 빛나는 영웅본색 (1986, 오우삼 감독) -- 관객들이 영화가 끝난 후 기립박수를 쳤다.
친구랑 이 영화 보고 그 다음날 롱코트를 샀다.

열혈남아 (1987, 왕가위 감독) -- 두 편 동시상영관에서 봤는데 당시 충격이었다.

천녀유혼 (1987, 정소동 감독) -- 왕조현은 로망이었다.

첩혈쌍웅 (1989, 오우삼 감독) -- 아… 수현의 포스.


이때, 슬쩍 끼어든 감독이 바로 두기봉이었다.

우견아랑 (1989, 두기봉 감독) --– 이 영화로 주윤발은 우리나라에서 사랑해요 밀키스 광고를 찍었다.

 

 

한마디로 두기봉은 다른 감독들에 비해 존재감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강호에 홀로 남아계신 분이 바로 두기봉이시다.

이 분, 에로물과 SF만 빼고 50편에 가까운 작품을 연출하면서

엉뚱하고 함량미달의 작품들도 많았다.


사실 내가 홍콩감독들에게 부러운 점은 이거다.

한 해에 한 편 혹은 두 편씩 찍어댄다.

꽝도 있지만 어느 순간 단련된 장인이 되어

그 중 걸작을 만들어 낸다.

우리나라는 3편만 찍어도 중견감독 소리를 들으니

홍콩감독들이 들으면 웃을 수 밖에.

 


오우삼이 비둘기가 되어 미국으로 날라갔지만 결국 깃털만 빠졌고

서극은 초반에 비해 갈수록 힘이 딸리는 형편이 되어가고

두기봉만이 신기하게도 계속 진화 중이다.

 

일찌감치 두기봉을 발견한 것은 프랑스 영화지 <포지티프>였다.
“오우삼 이후 마침표를 찍었다고 생각되던 홍콩 누아르 장르에 전혀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는 격찬이었다.
<
포지티프>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같은 프랑스 영화지 <까이에 뒤 시네마>는 상대적으로 서극을 밀었다.
 
오늘 날, 포지티프가 옳았다는 게 증명됐다.
(앞 포스팅. 크리스 마르케 감독의 ‘라 제테’에서 <포지티프>는 좌안파 감독들을 지지했고
<까이에 뒤 시네마>는 누벨바그 감독들을 지지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밀레니엄 이후로 두기봉이 만든 작품들은 놀랍기만 하다.

 

대사건 2004

유도용호방 2004

흑사회 2005

흑사회2 2006

익사일 2006

문작 2008

매드 디텍티브 2008

복수 2009

 

 
호불호에 따라 어느 작품이 선정되어도 그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는 대단한 작품들이다.

 

난 이 중 고심 끝에 ‘문작’을 추천한다.

 

 

총 한방 쏘지 않는, 두기봉 답지 않은 귀여운 영화이면서

두기봉 스타일의 100점짜리 장면이 나오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난 이 장면을 보고 전율을 했다.

홍콩영화에서 왕가위와 더불어 시공간을 갖고 노시는 분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문작은 참새라는 뜻이고 소매치기의 속어이기도 하다.

주연은 두기봉 패밀리의 대표주자 임달화 형님이시다.

(오우삼의 첩혈가두로 기억되는 형님인데 네이버 검색에 의하면 162편 작품에 출연했다고 한다.

무려 162!!!!! 주로 비열한 악당역을 맡았다. 근래 두기봉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다.
주윤발, 유덕화가 사라진 홍콩영화계에서 살아 남으신 분이다.)



임달화는 동료들과 함께 소매치기를 업으로 살아간다.

그러다가 참새처럼 등장하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모두가 이 여인에게 꽂혔다.

티격태격하는 중년들의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그러나 줄거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언급하는 첫 번째 장면.

110초 정도로 원씬원테이크(컷없이 한번에)로 찍었다.







유려한 카메라의 움직임이 흐르는 물처럼 막힘이 없다.


그러나 이 영화의 압권은 라스트 씬이다.

임달화 일당은 새장에 갇혀있는 참새 같은 여인을 구하기 위해

전설적인 소매치기 조직과 여권쟁탈전 한판 승부를 벌인다.

 



이 씬은 총 사단계로 이루어졌고 자그만치 9분 동안 대사조차없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비가 오고 전매특허 슬로우모션 나가신다.

일단계. 적인가 했더니 아니다. 초반 긴장감 조성.




 

 

 

 

이단계. 드디어 악당들 등장. 얼굴 포스가 장난 아니다.

지나가는 차에 물이 튀기면서 승부가 시작되고 결과는 임달화의 승.

임달화의 자켓에 칼 자국이 생겼지만 상대방은 바지가 짤렸다.





 

 

삼단계. 이 장면이 베스트 오브 베스트다.

우산을 쓴 사람들. 절묘한 음악과 함께 한 편의 뮤지컬 같은 군무를 선사한다,

어느 무협영화보다 어느 서부영화보다 멋진 결투씬이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면서 결투가 시작되고 임달화는 우산돌리기 신기술을 선보이며 승리한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사단계.

소매치기계의 전설적인 인물, 왕초가 등장한다. 부하들에게 협공을 당하는 임달화.

그러나 동료들이 등장한다. 14로 펼쳐지는 협공전.
정신없이 왕초를 몰아치지만
그는 역시 대가답다. 결과는 왕초의 승리로 보인다.

그러나 왕초의 작업도구(면도날)에 피가 묻어있다. 임달화에게 상처를 준 것.

소매치기 룰에 없는 것이다. 왕초는 자신이 늙었음을 깨닫는다.

 







이럴수가 난 이 씬을 보고 오르가슴을 느꼈다.

9분 동안 황홀경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아니 빠져 나오고 싶지 않았다.

 

 

앞서 얘기한 장면을 포함, 두 장면 모두 음악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자비어 자모(xavier jamauxd) fred avril. 두 프랑스 뮤지션이 음악을 작곡했다.

(음악 너무 좋다. 매드 디텍티브 등 두기봉과 작업을 했으며 자비어 자모는 마크 콜린과
올라노(ollano) 밴드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두기봉은 자신의 영화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영화로 유도용호방과 함께

문작을 꼽으며 이 두 영화는 오랜 도시 홍콩에 대한 내 존중.이라고 말했다.

 

홍콩에 대한 그의 애착이 느껴지며 크레딧 자막이 올라갈 때

홍콩 거리를 찍은 흑백 사진을 올려놓았다.

 




 



멈추지 않고 계속 진화하는 감독, 두기봉.

그의 차기작은 장 피에르 멜빌의 ‘암흑가의 세 사람’ 리메이크다.